[커버스토리] 선의 담는다고 좋은 정책 될까요

입력 2024-01-29 10:01   수정 2024-01-29 15:15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보장해주는 법안이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의결됐습니다. 쌀 등 주요 농산물값이 기준 가격에 못 미칠경우 일정 차액을 메꿔주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법 개정안입니다. ‘남는 쌀 매입법’으로 알려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좌초하자,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엔 최저가 보장제로 핵심 내용을 바꿔 양곡법 개정을 재추진하려 합니다.

이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 정책들과 비슷해 보입니다. 지금 민주당은 대구와 광주를 잇는 11조 원 규모 고속철도 사업의 빠른 추진을 위해 특별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하고, 여권은 간병비의 건강보험 적용과 금융투자세 폐지를 추진하는 등 이른바 ‘퍼주기’ 경쟁이 극심합니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농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선의(善意)를 담았다고 포장한 겁니다. 문제는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 한 정책이 거꾸로 이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을 핵심으로 하는 직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20%로 제한한 정책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종의 ‘선의의 역설’인데요, 어떤 부작용이 있었고, 왜 그런 부작용이 나타났으며, 이런 정책이 계속 추진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
약자 돕기는커녕 더 힘들게 한 '선의의 역설'
경제사와 정책 사례 속에 숱하게 등장하죠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이면 나랏빚이 크게 늘어날 위험이 있어요. 그런데 선의(善意, good will)만 앞세운 정책은 더 많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당초 목표와 달리, 이들을 거꾸로 힘들게 할 수 있죠. 시장경제 원리를 무너뜨려 경제 시스템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물론, 경제주체들에게 잘못된 경제관념을 심어주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금주법부터 주택 구입 장려책까지

선의만 강조한 정책의 역설은 경제사 속에 숱하게 나옵니다. 1919년 미국 금주법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술로 인한 범죄와 알코올중독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술의 제조와 운반, 판매는 물론, 수출입까지 막습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나라라고 해도 국민 생활까지 규율하긴 쉽지 않습니다. 불법 주류 제조와 유통, 불법적인 술집 운영이 판을 쳤고, 술을 찾다가 공업용 메틸알코올을 마시고 사망한 사례마저 생겨납니다. 금주법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꼴이죠. 이 법은 결국 1933년 폐지되고 맙니다.

시기를 훌쩍 뛰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가볼까요? 이 사태의 직접적 계기는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프로그램인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짚어보니 1990년대 후반 클린턴 정부가 주택 구입을 장려한 정책이 원인이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자기 집을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며 집값의 90%까지 은행에서 무리하게 빌려준 게 탈을 일으킨 거죠. 이후 집값이 떨어지며 빚을 끌어다 쓴 서민들만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는 부작용을 남겼습니다.

현 베네수엘라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는 2013년 집권 이후 좌파 경제정책을 펴는데요, 대표적으로 ‘마진율 30% 룰’을 만들어 제품 판매 가격에 통제를 가합니다. 원가에서 30% 이상 이익을 남기면 사업주를 구속하고 업체는 국유화한다는 무시무시한 규제입니다. 하지만 이래선 생산 활동을 이어갈 기업이 남아나기 어렵습니다. 이 규제 이후 3년 만에 베네수엘라 기업은 1만2000여 개에서 2000여 개로 80% 줄어듭니다. 물가는 1년 만에 1만3000배가 폭등합니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소비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준 겁니다.

‘저신용자에게 저금리’ 엉터리 경제학

우리나라의 정책 사례도 많습니다. 최근 정부는 공휴일에 영업을 못 하게 한 대형 마트 의무휴업제를 손보겠다고 했습니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고 있는데 대기업 유통시설에 규제를 가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는 발상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됐죠. 전통시장 상인들은 이 규제의 도움을 받기보다 자체적인 경쟁력 높이는 데 올인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 시행한 대학 강사법도 처음엔 신분보장이 안 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학 시간강사를 돕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1년간 임기 보장에 4대 보험도 들어주면서 강사 인건비가 높아지자 대학들이 채용 강사 수를 줄여 시간강사 자리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엔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 등의 고통을 줄여준다며 법정 최고이자율을 연 24%에서 20%로 낮췄습니다. 문제는 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하고 연 20%가 훨씬 넘는 제도권 밖 고리의 사금융을 찾는 저신용자들을 크게 늘렸다는 점입니다. 저신용자에겐 당연히 고금리를 적용해야 하는데 거꾸로 “저신용자에게 저금리를”이라고 외친 게 어려운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문 정부의 국정 과제이던 소득주도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문 정부 첫해 6470원이던 최저임금을 임기 내 1만 원으로 만들겠다며 최저임금을 급하게 올린 정책을 볼까요? 인간다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자는 취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이 동반되지 않는 최저임금의 인상은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줍니다. 자영업자들은 알바를 고용하기 어렵게 됐고, 피해는 알바로 삶을 지탱하는 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저임금층의 소득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한계가 확인된 겁니다.
NIE 포인트
1. 일반적인 포퓰리즘 정책과 선의를 강조한 정책의 유사점, 차이점을 알아보자.

2. 저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는 게 가혹하다는 주장을 놓고 토론해보자.

3.소득주도성장은 ‘마차가 말을 끄는 식’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자.
국민 경제생활에 참견하려는 발상이 문제
'시장 자율 중요성' 애덤 스미스가 강조했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고 성장의 과실을 함께 나누자는 정책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사례는 한둘이 아닙니다. ‘선의의 역설’이라 부를 만하죠? 그러면 왜 이런 정책이 예외 없이 실패하고 마는지, 그럼에도 이런 시도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탐구해보겠습니다.

무분별한 시장 개입은 필패

먼저 인위적인 정책 개입은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고 그 작동 방식을 망가뜨릴 위험성이 큽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활동 현장에 실제로 존재하는 힘입니다. 모든 사람이 공정한 규칙에 입각해 오로지 자신의 사익만 추구하는 것으로도 공익은 배가된다는 게 스미스의 주장입니다. 그는 <국부론>에서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라고 했죠.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선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타심은 없어도 사회는 존속할 수 있지만, 정의가 없으면 사회는 붕괴한다.” 여기서 정의란 계약이나 약속의 이행, 재산권 존중 같은 겁니다. 국가는 이런 원칙들이 잘 유지되도록 역할을 하고, 개인의 사익 추구 행위나 시장에 대한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스미스는 강조합니다. 이기심이 원인이 된 경제행위가 시장에서 잘 ‘교환’만 된다면 선의를 베풀고자 하는 인위적 행위는 필요 없다는 겁니다.

다음으로 시장 정보를 수집하는 데 정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정책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겠죠. 시장 참여자들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기 그지없는데 이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려고 하니 원래 의도가 실현되지 않는 겁니다. 한마디로 ‘정부 실패’입니다. 어떤 정책이 나오면 시장과 경제주체들의 기대가 형성되면서 정부 예상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요. 새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합리적 기대 가설’의 핵심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규제를 회피하려는 이익집단의 노력이 선의의 역설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러의 ‘포획이론’이 이를 지적합니다. 규제 정책은 일부 소규모 집단엔 혜택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책 당국이 이런 이익집단에 포획당해 이들의 구미에 맞는 규제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특정 산업의 이익을 위해 정부 규제가 이용당하고 자원 배분이 왜곡될 수도 있습니다.

선의의 역설은 끊임없이 빚어지는데, 왜 정책 당국은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할까요? 여기엔 세계적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 미국 UC버클리 교수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란 책이 단서를 제공합니다. 프레이밍(framing, 현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틀)이란 용어를 대중적으로 알린 레이코프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 보죠.

미국의 보수주의는 국가를 하나의 커다란 가정으로 봅니다. 보수주의자들은 가정에서 ‘엄격한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고, 국가도 그러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엄격한 아버지는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체벌도 불사하죠. 자녀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바르게 크길 바랍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면 더 이상 개입하지 않습니다. 자율에 맡길 책임 있는 인격체가 됐기 때문이죠.

인위적인 선행이 체계 망가뜨릴 수도

반면 미국 내 진보주의는 비슷한 비유를 하자면 ‘자상한 부모’를 추구합니다. 자녀와의 대화를 통해 무엇이 선(善)인지 조언하려 하죠. 타인에 대한 책임, 이타심, 가정과 국가·공동체를 위한 헌신을 강조하고 마약·범죄 등으로부터 보호하려 합니다. 그런데 자상한 부모는 국가주의 철학으로 연결되고, 뭔가 자꾸 개입하려는 속성을 갖습니다. 좌파적 성향이 선의를 담은 정책에 계속 주목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이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평가는 매섭습니다. 선행을 하려는 사람은 원래 선한 사람과 다르다는 겁니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선행만 하려는 사람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방해할 수 있고, 시장질서와 체계를 엉망으로 만든다는 거죠.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볼 부분입니다.
NIE 포인트
1. 애덤 스미스가 말한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해 토론해보자.

2. 조지 스티글러의 ‘포획이론’에 대해 알아보자.

3. 국가가 일일이 규율하고 간섭하는 게 왜 문제인지 생각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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